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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동사니

공정함이 필요한 세상 공정함이 필요한 세상 세종대왕님은 백성들이 편안하게 살기 위해 정치가들이 고생해야 한다는 곧은 의식을 가지고 계셨는데, 윗물이 맑으면 아랫물도 맑듯이 세종대왕님의 치세 하에는 훌륭한 관리도 많았습니다. '정갑손'이라는 인물도 세종대왕님 시대의 관리로, 예조참판, 대사헌, 예조판서 등의 높은 벼슬을 거치면서도 청렴한 관리로 이름을 높인 사람입니다. 정갑손이 함경도 관찰사로 지낼 때 일입니다. 임금의 부름으로 한양까지 다녀와야 했는데 당시 함경도에서 한양까지의 여정은 달을 넘기는 먼 길이었습니다. 그렇게 오래 자리를 비웠다가 돌아온 정갑손은 밀린 업무를 처리하며 한 장의 보고서를 보았습니다. 함경도에 선출한 관리들에 대한 보고서였는데 이것을 본 정갑손은 노발대발하며 책임자를 불렀습니다. "여기 새로 뽑은 관.. 더보기
시간은 항상 멈춰 있는 게 아닙니다 시간은 항상 멈춰 있는 게 아닙니다 한 노신사가 시장 한구석에 서서 눈물을 펑펑 흘리며 서럽게 울고 있었습니다. 노신사는 18세기 영국의 시인이자 평론가로 알려진 '새뮤얼 존슨'이었습니다. 큰 명예와 많은 제자의 존경을 받는 시인이 왜 시장 구석, 땡볕 아래 서서 울고 있는 것인지 사람들은 궁금했습니다. 소식을 들은 제자들이 달려와 이유를 물었습니다. "스승님. 어찌 된 일입니까? 혹시 무슨 큰 변고라도 생긴 겁니까? 걱정스럽습니다." 그러자 새뮤얼 존슨이 제자들에게 대답했습니다. "사실은 지금 서 있는 이 자리는, 내가 어린 시절 아버지께서 낡은 책을 팔며 장사하던 곳이었네. 어느 날 아버지가 몸이 좋지 않다고 나에게 하루만 장사를 해달라고 했는데, 나는 가난한 장사치인 아버지의 모습이 부끄러워 거절했.. 더보기
링컨의 턱수염 링컨의 턱수염 미국의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 그가 대통령이 되기 위해 존 브레킨리지와 치열한 선거전을 치를 때 이야기입니다. 뉴욕 웨스트필드에 사는 11살 소녀 그레이스 베델이 1860년 당시 공화당 대선후보이던 링컨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링컨 아저씨, 저는 아저씨가 훌륭하게 되기를 바라요. 그런데 아저씨는 얼굴이 너무 못생겼어요. 턱은 주걱턱이고 눈은 움푹 들어갔고요, 광대뼈는 왜 그렇게 뾰족 튀어나왔나요. 그래서 우리 동네 어른들은 아저씨가 너무 못 생겨서 싫다고 하는데 어쩌면 좋아요. 하지만 아저씨가 수염을 기르면 지금보다는 훨씬 더 부드러워 보일 거예요." 당시 정치가들은 수염이 없는 깔끔한 얼굴이 트레이드마크인 시대였습니다. 더구나 11살 소녀의 말에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 더보기
평화사상가 안중근 평화사상가 안중근 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역에서 총성이 울린 후 세상을 향해 포효한 목소리. "코레아 우라!(대한 만세)" 을사늑약을 강제 체결한 이토 히로부미 조선총독부 초대 통감을 저격하고 대한 만세를 외친 조선 청년 안중근. 불공정한 일본 법정에서 고작 공판 7일 만에 사형을 선고받은 안중근의 마지막 부탁은 한 가지였습니다. "사형집행 날짜를 한 달 남짓만 늦추어 줄 수 있는가? 꼭 완성하고 싶은 책이 있다." 하지만 일본은 그마저도 무시했습니다. 이제 막 서문과 첫 장을 마친 1910년 3월 26일, 하늘도 슬퍼 봄비의 눈물을 흘리던 그 날 안중근 의사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옥중에서 써 내려간 '동양평화론' '수백 년 동안 유럽 열강을 이끈 것은 도덕을 상실한 마음이며 귀중한 생.. 더보기
38년을 지킨 약속 38년을 지킨 약속 종기나 욕창이 생기지 않도록 두 시간마다 딸의 몸을 뒤집어 주었습니다. 네 시간마다 딸의 혈액을 채취해 혈당을 체크하고 인슐린을 주사했습니다. 그리고 매일 12번에 걸쳐 음식을 튜브로 주입해 주고 모든 대소변을 처리해야 했으며 한 번에 2시간 이상 잠들지 못하고 쪽잠을 자며 딸을 돌봤습니다. 무려 38년 동안 어머니는, 식물인간이 된 딸을 그렇게 돌보고 있었습니다. 1970년, 당시 16세 소녀 '에드워드 오바라'는 인슐린 부작용으로 혼수상태에 빠지더니 안타깝게도 식물인간이 되었습니다. 에드워드는 의식을 잃기 전 엄마에게 말했습니다. "엄마. 내 곁을 떠나지 않겠다고 약속해 줘요." 엄마는 딸의 손을 꼭 쥐면서 말했습니다. "물론이지. 엄마는 절대로 널 떠나지 않을 거야." 의사는 에.. 더보기
너무나 고귀한 정성을 받았습니다 너무나 고귀한 정성을 받았습니다 옛날에 비하면 풍족한 세상이 되었다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아직도 대한민국의 복지 사각의 어두운 곳에서는 힘겨운 이웃들이 많은데 특히 사회적인 약자인 여성들에게는 여전히 어려운 세상입니다. 저는 수도권에 위치한 여성 쉼터의 원장입니다. 우리 쉼터는 생활고와 빚에 쫓겨 노숙자가 되어버린 여성, 남편의 가출로 혼자서 힘겹게 아이를 키우는 미혼모, 잔인한 가정폭력을 피해 몸을 숨긴 여성 등 마음에 큰 상처를 입는 사람들끼리 위로하면서 살아가는 곳입니다. 어느 날 이러한 분들이 저를 조심스럽게 찾아와 너무 뜻밖의 제안을 해 주셨습니다. 우리 쉼터 분들도 따뜻한 하루 메일을 받아보시는데 6·25전쟁 때 멀고 먼 에티오피아에서 파병 와서 목숨 바쳐 싸워주고 희생하신 강뉴부대를 위해 작은.. 더보기
넓은 세상을 향해 나아가다 넓은 세상을 향해 나아가다 1895년, 일본에 의해 명성황후가 시해되고 아관파천의 수치를 겪은 고종은 민영환과 윤치호 등을 러시아 특사로 파견해 일본을 견제할 힘을 빌리려고 했습니다. 1896년 3월 10일,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의 대관식에 축하사절로 참가한다는 명분으로 민영환 일행은 긴 여정을 시작합니다. 하지만 제시간에 중국에 도착하지 못한 민영환은 유럽행 배를 놓치고 서둘러 일본 요코하마로 건너가 다시 배를 탑니다. 태평양을 횡단한 민영환은 캐나다 밴쿠버에서 미국으로 입국하고 미대륙을 철도로 가로지른 후 뉴욕에서 런던행 배를 타게 됩니다. 런던에서 독일 베를린을 거쳐 러시아 모스크바에 도착한 민영환 일행은 대관식에 참석하고 다시 시베리아를 가로질러 블라디보스토크를 통해, 6개월 2일 만에 조선.. 더보기
35개 국어를 하는 선생님 35개 국어를 하는 선생님 영국의 브렌트 지역은 다문화 배경을 가진 빈민층 아이들의 많은 곳입니다. 이 지역의 많은 아이는 영어를 제대로 말할 수 없어 학교 교육을 잘 받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아이들을 위해 35개국 언어를 공부한 선생님이 있습니다. 학교에서 미술 교사로 있는 '안드리아 자피라쿠'는 우범지역에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자라난 학생들이 결국 범죄자가 되는 악순환을 끊고 싶었습니다. 안드리아 선생님은 아이들이 영어를 모르면 내가 아이들의 말을 배우면 된다고 생각하고 학생들의 다양한 민족적 구성을 고려해 무려 35개의 언어를 공부해 학생들과 소통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학부모들도 자주 만나고 지역 경찰들과도 연계를 맺어 학생들이 폭력단과 접촉하지 않도록 갖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 더보기
먼저 보여 주세요 먼저 보여 주세요 하나뿐인 자식을 위해 평생 모은 돈을 써버린 할아버지의 노후는 너무나도 초라했습니다. 몇 푼 안 되는 노령연금을 쪼개 쓰는 할아버지는 친구들 만나기도 눈치가 보여 자주 외출도 못 합니다. 오래전 이민 갔던 친구가 잠시 귀국하던 날 할아버지는 그 친구와 잠시나마 회포를 풀고 싶었지만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았습니다. 그리고 차마 떨어지지 않는 입으로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아범아. 혹시 10만 원 빌려 쓸 수 있겠니?" 아들은 한숨을 쉬며 말했습니다. "아버지, 손자가 내년이면 학교에 들어가요. 애들에게 쓸 돈도 항상 모자란 것 알고 계시잖아요." 아들은 마음에는 걸렸지만 어쩔 수 없다고 자기합리화하며 아버지의 부탁을 거절하고 출근해 버렸습니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보다 못한 며느리가 시아.. 더보기
꽃돼지분식 꽃돼지분식 춘천에 위치한 5평 남짓한 좁고 허름한 '꽃돼지분식'이라는 떡볶이집이 있었습니다. 가게의 월세는 10만 원이지만 주인 할머니는 그 월세 내기도 항상 빠듯했습니다. "할머니 그만 주셔도 돼요." 저렴한 가격에 너무도 푸짐하게 떡볶이를 계속 퍼주었기 때문입니다.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을 대신해 어머니 곁을 지켰던 외아들 역시도 안타깝게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나자 할머니는 슬픔을 떨쳐내기 위해 계속 떡볶이를 만들었고, 어린 손님들이 배부르게 먹고 행복해하는 모습이 좋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가게 앞에 큰 도로가 생기면서 할머니의 가게는 철거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월세 10만 원 내기도 어렵던 할머니가 새 가게를 여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그러자 어린 시절부터 할머니의 나눔과 떡볶이를 먹고 자란 사람.. 더보기